G로스팅 당일로스팅 맛있는 신선한 고소한 갓볶은 커피 원두 드립 분쇄 에스프레소 카페 홀빈

뒤로가기

작성일 18.12.19 10:45:43

조회 233

평점 0점  

추천 추천하기

내용

심벌즈 / 이훤


반바지를 입은 슬픔이 걸어간다

이런 계절에는 몸이 조금 더 길어져서

다 감추지 못한다

뜨거운 커피를 시킨 건 끝내 반팔을 입어서는 아니었다

문을 열고 닫는 사람은 많은데

전부 긴 옷을 입고 있다

아이스커피를 시킨 사람의 손을 잡고 문을 연다

슬픔은 죄가 아니야

미지근한 계절이 식어간다





§ 얼른 이해되지 않는 시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시의 정황부터 짚어본다. 이 시는 슬픔에 반바지를 입혀 감정을 의인화하고 있다. 실상 “반바지를 입은 슬픔”은 슬픔에 가득 찬 사람에 다름없을 테다. 반바지에 반팔을 입은 그는 좀 쌀쌀한지 뜨거운 커피를 시킨다.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곳에 문이 있다는 것이다. ‘커피’에 방점을 찍고 읽으면 그 문은 카페의 문일 수 있고, ‘슬픔’에 주안점을 둔다면 마음의 문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이 “문을 열고 닫는 사람은 많은데 / 전부 긴 옷을 입고 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긴 옷을 입은 것이 좀 더운지 아이스커피를 시킨다. 그리고 슬픔과 긴 옷을 입은 사람은 “손을 잡고 문을 연다”.

시의 정황을 살핀 다음에는 그 상황에 처한 화자의 심리를 헤아려본다. 의인화된 슬픔. 여기 몹시 슬픈 사람이 있다. 그는 이 슬픔을 “다 감추지 못한다”. 너무 슬퍼서 슬픔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가 “뜨거운 커피를 시킨 건” 짧은 옷가지를 파고드는 한기 때문이 아니라 이 슬픔을 달래줄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긴 옷을 입고 있는 세상에서 반바지에 반팔을 입는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외톨이다. 아무도 그의 슬픔을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음속을 다녀갔지만, 누구도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지 못했다. 단 한 사람. 긴 옷을 입고 아이스커피를 시킨 사람만이 ‘슬픔’을 이해해준다. “슬픔은 죄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시의 정황을 생각하고 그 상황 속 화자의 마음을 추측해본 뒤에는 표현 하나하나를 따져본다. “이런 계절”은 언제일까. 아마 겨울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림자는 여름에 짧고 겨울에 길다. “몸이 조금 더 길어”졌다는 것은 그림자의 길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 문학작품에서 그림자는 곧잘 숨겨져 있던 이면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슬픔’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짧은 옷가지를 입은 슬픔이 뜨거운 커피를 시키는 장면과 사람들이 전부 긴 옷을 입은 모습에도 부합한다. 슬픔의 옷차림은 이 계절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가 뜨거운 커피를 시키는 일은 자연스럽다. 반면 긴 옷을 입은 사람의 옷매무새는 겨울에 걸맞지만, 그가 시킨 아이스커피는 부자연스럽다. 결국 이 시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모두 어딘가 빗나간 사람들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심벌즈’는 쇠붙이를 둥글넓적하게 만든 타악기다. 두 장의 쇠붙이를 맞부딪혀 소리를 낸다. 두 장의 심벌즈는 쌍둥이처럼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과 다르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시의 제목이 심벌즈인 것은 그래서일 테다. 두 등장인물이 심벌즈처럼 꼭 닮았고, 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심벌즈가 울듯 “슬픔은 죄가 아니야”라는 위로를 상대에게 던져줄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이 느끼는 추위와 긴 옷을 입은 이가 느끼는 더위가 만나 겨울은 “미지근한 계절”이 된다. 힘든 삶이지만 나를 이해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 이 힘든 시절이 조금은 견딜 만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림은 툴루즈 로트렉(Toulouse Lautrec)의 〈침대에서(In Bed)〉(종이에 유채, 54×70.5㎝, 오르세미술관)]


#groasting #지로스팅 #커피 #에세이 #커피에쓰다 #커피에달다 #이현호시인 #이훤시인 #심벌즈 #우리너무절박해지지말아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수정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수정 취소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평점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

G로스팅 고객센터
전화 : 0507-1330-8793 월 - 금 : 오전10시 - 오후 3시(주말 / 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오후12시 - 오후 1시 평일오후3시 이후 및 주말/공휴일은
카카오톡 채널'groasting'로 문의남겨주시면 빠른 답변드리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