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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1.30 1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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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 강은교




그 집은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신혼 시절 제일 처음 얻었던 언덕빼기 집
빛을 찾아 우리는 기어오르곤 했어
손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는 두드렸어
그러면 문은 대답하곤 했지
삐꺽 삐꺽 삐꺽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빛이 거기서 솟아나고 있었어,
씽크대 위엔 미처 씻어주지 못한 그릇들이 쌓여 있었지만
마치 씻어주지 못한 우리의 젊은 날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 창문도 아마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싸구려 커튼이 밤낮 출렁거리던 그 집
자기들이 얼마나 멀리 아랫동네를 바라보았는지를
그 자물쇠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단단히 사랑을 잠글 수 있었는가를
그 못자국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자기들이 얼마나 무거운 삶의 옷가지들을 거기 걸었는지를
어느 날 못의 팔은 부러지고 말았었지
새벽은 천천히 오곤 했어
그러나 가장 따듯한 등불을 들고
그대를 기다리곤 하던 그 나무계단을 잊을 순 없어
가장 깊이 숨어 빛을 뿜던 그 어둠을 잊을 순 없어
어두울수록 등불의 살은 은빛으로 빛나더니
아, 그 벽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저녁이면 기대 앉아 커피를 들던
그 따스한 벽
순간도 영원인 환상의 거미 날아오르던 곳
자기가 얼마나 튼튼했는지를
사랑의 잠 같았는지를





정영주 화가의 그림(Street, Mixed media on canvas, 97x146cm, 2018)



§ 가난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예부터 뜻있는 선비는 청빈을 미덕으로 여겼다. 작품을 위해 삶을 내던진 예술가는 빈곤에 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껏 존경과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가난은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가난에 굴하지 않는 정신을 찬미하며 감동하지만, 정작 가난 속에 살다간 이들은 대체로 불행했다. 가난을 괴로워했다.


그들은 불행의 와중에도 자기 삶의 가치를 지킨 것이지 그저 불편함을 견딘 것이 아니었다. 자발적 가난이 가난을 향한 사랑은 아닌 것이다. 돈벌이보다 우선하는 일을 향한 맹목적인 투신, 돈으로 대변되는 세속적 가치에 대한 거부가 곧 가난을 원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난한 처지를 감수하는 것과 가난을 사랑하고 원하는 것은 다르다. 뒤따르는 가난을 물리치지 않는 것과 가난을 껴안고 사는 것은 다르다. 평생을 가난에 허덕였던 문인, 예술가의 전기를 보다 보면 그들의 가난을 미화하는 경우가 잦다. 그런 글이 불편한 건 내가 너무 세속에 물들었기 때문일까. 정말 가난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자유분방한 삶과 직설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그의 소설 『팩토텀』에 이렇게 썼다.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얻기 위해 일주일 내내 하루에 오 센트짜리 막대사탕 두 개만 빨며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그저 방해할 뿐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가난의 고통에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을 위대한 영혼의 통과의례처럼 여기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불편하다. 강은교 시인의 「그 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가난 그 자체에 다름 아닌 ‘그 집’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그 집을 떠나왔기 때문이다. 가난은 아름답지 않지만, 가난의 추억은 아름다울 수 있다. “저녁이면 기대 앉아 커피를 들던” 벽은 분명 차디찼을 테지만, 가난이 지나간 자리에서 되돌아본 그 벽은 따스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빛을 찾아 기어올랐던 우리’이다. 우리가 여전히 그 집에 머물렀던들 그곳이 “사랑의 잠” 같을 수 있을까.





글쓴이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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