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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1.23 09: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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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 기형도




그리하여
겨울이다. 자네가 바라던 대로
하늘에는 온통 먹물처럼 꿈꾼 흔적뿐이다.
(…중략…)



마을 한가운데에선
간혹씩 몇 발 처연한 총성이 울리었다
아무도 예언하려 하지 않는 시간은
밤새 세상의 낮은 울타리를 타넘어 추운 벌판을 홀로 뒹굴다가
몽환의 빗질로 우리의 차가운 이마를 쓰다듬고
(…중략…)



겨울 오후 3시, 그 휘청휘청한 권태의 비탈
텅 빈 서랍 속에 빛나는 압정 한 개
춥죠? 음. ……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그리하여 (수평)으로 쓰러지는 한 컵의 물. 한 컵 빛의 (비명).
잠자는 물. 그 빛나는 죽음. 얼음의 꿈. 토막토막 끊어지는 (초침).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최후의 무리였다.
모든 꿈이 소멸된 지상에 홀로 남아
두꺼운 외투와 커피 한 잔으로
겨울을 정복하는 꿈을 꾼다.
춥죠? 음. ……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중략…)



이것이 희망인가 절망일 건가 불빛 속에서
낮게낮게 솟아오르는 중얼거림
깨지 못하는 꿈은 꿈이 아니다. 미리 깨어 있는 꿈은 (비극)이다.
(포도) 위에 고딕으로 반사되는 발자국마다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희미한 음향을
듣는가 자네 아직도 꿈꾸며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기형도 시인]



§ 엊그제가 입동이었다. 그리하여 겨울이다. 써늘한 바람에 가로수는 힘없이 빛바랜 잎사귀를 떨어뜨린다. 행인들은 어제보다 길어진 외투 깃을 여미며 집을 향해 잰걸음한다. 그들은 육방(六方)이 벽으로 막힌 집 안에서 노곤노곤한 육신을 쉬리라.


사람들은 따듯한 물로 몸을 녹이고, 이불 속을 자신의 온기로 덥힐 것이다. 잠시나마 추위를,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을 잊을 것이다. 겨울 한가운데 저마다의 성을 쌓고 이 계절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꿈도 없는 곤한 잠을 기대하며. 그리하여 겨울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꿈은 밤새 곤잠의 울타리를 타넘어 추운 벌판을 홀로 뒹군다. 간혹 마을 한가운데에서 들려오는 몇 발의 총성을 피해 사람들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린다. 모두가 잠든 침묵의 시간은 무엇도 예언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겨울이다. 그 휘청휘청한 권태의 비탈에서 꿈이 묻는다. 꿈에게 묻는다. 춥죠? 음. …… 춥군. 그런데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겨울의 한복판에서 안락한 육신과 마른 나뭇가지처럼 떨고 있는 꿈. 이것은 희망인가 절망일 건가. 살아 있다, 살아 있다라고 잠꼬대하는 영혼은 삶인가 죽음일 건가. 그리하여 겨울이다.


그리하여 겨울이다. 수평으로 한 컵의 물이 쓰러지듯이 문득 소스라쳐 잠을 깨면 창밖으로 낯선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텅 빈 서랍 속에 빛나는 압정처럼. 누군가 하늘에 온통 먹물처럼 꿈꾼 흔적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다. 모든 꿈이 소멸된 지상에 홀로 남아.“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뒤표지에 있는 글이다. 서른 살을 맞지 못하고 타계한 기형도가 살았던, 엄혹했던 1980년대는 지났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최후의 무리가 있었다. 두꺼운 외투와 커피 한 잔으로 겨울을 정복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


지금은 봄인가?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가는 사람이 없는 시대는, 그리하여 겨울이다. 지금도 어디에서인가 누군가는 두꺼운 외투 깃을 여미고 커피 한 잔의 온기에 몸을 데우며 먹먹하니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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