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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11.05 1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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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허수경(시인) / 아직도 나는 졸면서


철물점 모퉁이에 자귀나무 연자꽃이 붉어갑니다

제 몸보다 더 큰 배터리를 동쳐맨 라디오에서

운다고 옛사랑이 흘러나오면 꾸깃꾸깃한 치마를

뒤뚱이며 역전다방 미스 김이 커피 배달 가는,

길을 가로질러 어느 문으로 사라지는 미스 김

마치 꿈의 문을 통과해서 당도하는 거대한 무의식의 아가리 같은

저 문

자귀나무 연자꽃이 봉긋한 반달의 옆구리를 털어

수염꽃을 피우고, 라디오는 제 몸보다 더 큰 동력으로

운다고 옛사랑이, 과격해진다고 옛사랑이

머리칼을 쥐어뜯고 앞가슴을 풀어헤치며, 그러나

졸면서 한낮의 햇살 아지랑이를 피워내는

철물점의 쇠사슬, 대못, 가시 철망 그러나

풀붓이며 대싸리 빗자루며

가두려는 억센 것이 풀려는 순한 것 사이에서 고대로 정돈되어 있는 저 무의식의 무심함!

미스 김은 나올 줄 모르고 채권 가방을 든

한 사내가 지나갑니다


전화 채권이나 수도 채권 사압니다

사압니다

운다고 옛사랑이 미친다고

옛사랑의 그림자가……







§ 1964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고, 1992년 독일로 건너가 고대근동고고학을 공부하며 시 쓰기를 함께했다.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비롯하여 6권의 시집을 냈다.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8년 10월 3일 위암으로 타계했다. 장례는 독일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유해는 지금 독일 뮌스터의 한 참나무 아래 잠들어 있다.

이상은 시인 허수경의 짧은 이력이다. 향년 54세. 평균에 대자면 그리 길지 않은 삶이지만, 그는 이 시간을 누구보다 밀도 높게 보냈다. 한국에서 독일로, 문학에서 고고학까지, 늘 스스로를 낯선 자리에 놓으며 자기 갱신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문학과지성사가 말한바 이국에 살면서도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빛내”왔으며, 시로써 현대문명에 맞선 작은 거인이었다.


「아직도 나는 졸면서」는 허수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혼자 가는 먼 집』에 실려 있다. 그는 이 책을 낸 뒤 돌연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의 언어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탐사하는 고고학 연구는 그의 시세계에 문명사적 상상력을 더해주었다. 2001년 펴낸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부터 불거진 전쟁, 난민 등의 문제의식은 한국시의 외연을 넓히는 데 이바지했다.


나는 지금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을 듣고 있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맞다, 운다고 옛사랑이 돌아올 리 없다. 그렇지만 남겨진 사람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노래도 부르고 시도 읽는다. 그러면서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사는 것이다. 허수경은 “제 몸보다 더 큰 배터리를 동쳐맨 라디오”처럼 작은 몸에 활활 타오르는 시적 에너지를 품고 있던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본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허수경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의 뒤표지 글이다.



[사진은 허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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