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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9.17 10: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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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시인) / 인연




한 번 맺은 인연을 끊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가를 문구 형님을 통해서 배웠다. 가령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1979년 여름 데모하다 잡혀 성동서 유치장에서 구류 살 때 그곳 정보과장으로 이성춘이란 분이 있었다. 하루에 한 차례씩 우리를 자기 방으로 불러 커피를 대접해주고 담배를 나눠주던 각별히 깨끗한 신사였는데 그곳을 나오자마자 나는 즉각 그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문구 형님은 그 후로 그가 강동서, 구로서, 은평서를 거쳐 마지막에 종로서로 옮길 때까지 그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켜왔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편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머리가 하얗게 센 그가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있었던 문구 형님의 영결식에 조용히 참석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 현재 전 세계에는 76억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나라 인구만 5천만 명 남짓입니다. 지역을 대한민국으로 국한해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욕조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이 80만 1923분의 1,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이 428만 9651분의 1,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814만 5060분의 1이라고 하니 좁다면 좁을 이 땅에서조차 나와 당신이 만나 우리가 되는 건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겁(劫)’은 어떤 시간 단위로도 잴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과 반석겁(盤石劫)에 비유합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8㎞인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개자겁입니다. 반석겁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8㎞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 불교에서는 부부 사이는 7천겁, 부모와 자녀 사이는 8천겁, 한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되는 데는 9천겁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옷깃만 스치는데도 5백겁의 인연이 있다고 하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닙니다.


이시영 시인의 시는 이런 인연을 소중히 여긴 “문구 형님”과 “이성춘”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데모대와 그들을 잡아 가둔 경찰서 정보과장이라면 서로 척질 만한데 두 사람은 이 악연마저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유치장에 갇혀 있던 문구 형님을 하루 한 번 자기 방으로 불러내 커피를 대접해준 정보과장 이성춘. 이들의 인연은 문구 형님의 영결식까지 이어집니다. 유치장에서 나오자마자 이성춘의 커피를 잊어버린 시인에게 인연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1979년 7월 4일 워커힐호텔에서는 ‘세계시인대회’가 열렸습니다. 유신체제 아래서 민주화운동을 펼치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문인들은 이곳에 몰려가 “한국의 시는 죽었다.”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입니다. 이때 이시영, 이문구, 송기원 등 9명이 경찰에 연행됩니다. 「인연」에 나오는 “문구 형님”이 바로 이시영 시인과 함께 끌려간 소설가 이문구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바다 호수』(문학동네, 2004)에는 문단 안팎의 풍경과 문인들의 소소한 뒷이야기가 많습니다. 「박영근 시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의 상갓집에 가장 늦게까지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는 사람이 문구 형님이었다.” 이문구 소설가가 사람 간의 인연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또 다른 일화입니다.


저는 친구를 만나면 종종 “오늘은 술 대신 가볍게 커피나 한잔할까?”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이시영 시인의 「인연」을 읽으며 카페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인연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배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인연의 무거움을 생각합니다.


[컬러사진은 고 이문구 소설가(1941~2003). / 흑백사진은 1982년 12월 15일 제1회 신동엽창작기금 전달식. 왼쪽부터 조태일, 이문구, 인병선(신동엽 선생 부인). 구중서, 정해렴. 서 있는 사람은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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