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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8.05.30 09: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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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시인) / 슬며시 눈을 감으면



감자탕 먹으러 가는 길 건너편, 조그만 커피 전문점 하나 있지, 멀리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어들이던, 아직 문 열고 들어가 본 적 없는, 간판이 짙은 코발트빛이었던가 차양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문득 문득 문턱을 넘고 싶은, 슬며시 눈을 감으면 내게로 스며드는, 실내악이 사향고양이 꼬리처럼 낭창거리고 있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길 건너편, 손가락이 긴 바리스타가 제조해주는 깊고 부드러운 루왁커피에 마른 혀끝 오래 적시고 싶은, 커피 볶는 향이 다탁 사이로 플레어스커트처럼 일렁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어렴풋한 현()의 세계 내게서 멀어지지도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내 마음의 소슬함이 망명 가서 꽂아놓은, 하얀 깃발 하나 혁명처럼 마르고 닳도록 펄럭이고 있는, § 시의 화자는 커피 전문점을 사랑하는 듯하다. 커피 전문점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어들이던” 모습이나 “아직 문 열고 들어가 본 적 없는”이라는 표현을 보건대 그 사랑은 짝사랑일 테다. 커피 전문점을 짝사랑의 대상으로 바꾸어 읽으면 이 시는 꽤 관능적이다. “손가락이 긴 바리스타”가 등장하고, “플레어스커트”가 펄럭이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의 열병이 만드는 저 환상을 이해할 것이다. 그이와 내가 함께 있는 몽상을 하지 않았다면 그건 짝사랑이 아닐 테니까. 안타깝게도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한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성싶다. 화자는 끝내 커피 전문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가게 문을 열기만 하면 될 일을 왜 저렇게 망설이는지 답답하다가도 그게 사랑 고백의 비유라고 생각하면 화자의 심정이 십분 공감된다. 나는 중학생 때 처음 사랑 고백을 시도했다. 그 아이 앞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기로 결심했지만 이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또 여러 번의 결심이 필요했다. 아름드리 곰인형을 든 채 그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목에 서 있던 그날 저녁의 떨림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지하다시피 화자가 “마른 혀끝 적시고” 싶다고 한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커피 열매의 씨로 만든다. 사향고양이는 육식동물이지만 커피 열매도 곧잘 먹는데 껍질과 과육은 소화하고 딱딱한 씨는 그냥 배설한다. 이 소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커피콩에 루왁 특유의 맛과 향이 가미된다고 한다. 주로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하는 루왁커피는 희소성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통한다. 루왁커피가 돈이 되자 사향고양이를 집단 사육하며 커피 열매만을 사료로 먹이는 농장이 생겨났는데, 이는 으레 동물 학대 논란을 불러왔다. 커피에 대한 또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향고양이를 ‘커피콩 배설 기계’로 만들어버린 현실은 사랑의 어두운 면을 환기한다. 대상이 동물이냐 인간이냐는 따질 게 못 된다. 신문지상에는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를 해코지한 사건이 빈번히 실린다.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사랑―동물 역시 생명이라는 점에서 나와 다르지 않다.―, 삐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사랑이 벌이는 학대와 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사랑인지 사랑이란 이름의 욕망인지 헷갈릴 때면 길이 어긋나서 하지 못한 첫 사랑 고백을 떠올린다. 내게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터벅터벅 돌아가던 길의 순정이 사랑의 척도다. 단지 그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던 그 시절. 누군가에겐 「슬며시 눈을 감으면」 같은 한 편의 시가 사랑의 척도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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