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커피에 대한 행위의 속성

합정동에서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10평 남짓한 스튜디오는 작업실과 전시나 강의를 위한 대관을 겸하는 공간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대관이 있는 날이라 청소를 비롯해 가구를 재배치하고 커피메이커에 미리 커피를 채워 넣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커피메이커에서 커피가 쪼르륵 내려오면서 향긋한 커피 향이 작업실 전체에 은은하게 퍼졌다. 원두는 어디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인근에 위치한 카페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생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가게로 바리스타인 주인과 친분이 생겨 이따금 커피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고도 했다.

한번은 그녀가 급한 마음에 슈퍼마켓에서 인스턴트커피를 커다란 봉지째 구입했다고 한다. 간편하고 저렴하고 무엇보다 혀에 착 감기는 다디단 맛에 만족했다고. 그 이야기를 카페 주인장에게 했더니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차이에 관해 (정확히는 인스턴트커피를 향한 비난이었지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참 들었다고 했다. 인스턴트원두커피는 가공할 때 첨가물이 발생할 뿐 아니라 같은 양이라도 카페인이 훨씬 많이 함유되어있다와 같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스턴트커피를 지양하자!”는 아니다. 그녀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날 이후 선뜻 사람들에게 인스턴트커피를 내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흔하디흔하고 누구나 즐겨 마시는데 무슨 대수인가 싶으면서도 나쁜 점을 ‘알아버린’ 이상, 내 사소한 행위가 타인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이상 이전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금 수고롭고 비용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좋은 원두를 구입하려 하고, 남이 먹을 식품을 살 때에도 꼼꼼히 살핀다고 했다.

아주 사적이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내 행위의 속성을 ‘앎으로써’ 내 생활의 질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어떻게든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다